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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공부

루소, 인간 불평등 기원론 2부

by 청춘차렷 2017. 9.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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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9.14. <<인간 불평등 기원론 2부>>

 

1. 서론

 

<<인간 불평등 기원론>>은 1부와 2부로 나누어져 있으며, 분리의 기준은 불평등의 정도에 따릅니다. 즉 평등한 사회와 불평등한 사회를 구분하였고 1부에서는 평등한 개인으로서 존재하는 ‘자연인’에 대해, 2부에서는 불평등한 사회 속에 존재하는 ‘문명인’에 대한 고찰을 통해 세상에 만연한 불평등의 기원이 무엇인지에 대해 자세히 기술하고 있습니다.

루소가 밝혀낸 불평등은 3단계를 거쳐 극도로 심화됩니다. 첫 번째 단계는 비교와 소유의 관념, 법이 발생한 시기입니다. 이 단계에서는 가진 자와 못가진 자의 대립이 발생합니다. 소유의 개념이 발생하여 개인 간 부의 편차가 생겨났고, 소유로 인해 발생한 온갖 악이 창궐하여 서로의 안전을 위해 사회적 합의(규칙)가 이루어져 낮은 단계의 법이 생성되는 시기입니다. 두 번째 단계는 행정 권력이 제도화 되는 시기입니다. 이 단계에서는 빈부의 격차가 권력으로 작용하여 강자(가진 자)와 약자(못가진 자)의 대립으로 발전합니다. 마지막 단계는 합법적 권력이 부패하여 독단적 권력으로 발전하는 시기입니다. 이 단계는 주인과 노예의 대립이 발생하는 불평등이 극대화되는 시기입니다.

본론에서는 각각의 단계를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도록 하겠습니다.

 

2. 본론

 

1단계 : 비교와 소유, 법의 발생

 

[소유의 발생]

 

어떤 땅에 울타리를 두르고 “이 땅은 내 것이다”라고 말하리라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이 그런 말을 믿을 만큼 단순하다는 사실을 발견한 최초의 인간이 문명사회의 실질적인 창시자이다 …… 그러나 이미 그 무렵에 사태는 더 이상 이전의 모습을 유지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을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이러한 소유 관념은 순차적으로 발생한 그 이전의 많은 관념들에 의존한 것으로, 인간의 정신 속에 한순간 갑자기 형성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개인으로서 평등하게 존재했던 자연인은 소유의 개념이 발생하게 되며 불평등한 사회로 접어들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루소가 말하는 불평등의 시작입니다. 공급이 충분하던 시절 인간은 자연에서 필요한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었습니다. 첫 번째 본질적 특성인 자기보존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 자연 속에서 사는 것으로 충분했고, 자연으로부터 무엇을 빼앗을 이유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어떠한 이유로 여러 가지 어려움을 직면하게 되었고 인간은 그것을 극복하는 방법을 배워갔습니다. 그 이유는 인구의 증가로 인한 식량의 부족일 수도, 기후의 변화로 인한 급격한 생활환경의 변화 일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점은 복잡한 정념의 발생으로 인해 이성이 발달했듯이 생존 상 발생하게 된 여러 가지 어려움으로 인해 도구가 발달하고, 우연히 불을 발견하고, 의식주가 발달하게 됨에 따라 인간이 다른 동물에 대한 우월성을 자각했다는 점입니다.

인간이 다른 동물에 대한 우월성을 자각하게 되며 자기 자신에게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여기서 ‘자존심’의 개념이 생겨났습니다. 또한 다른 동물보다 우월한 자기와 동류의 인간들을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개인’으로서 존재하던 인간은 동족을 관찰하며 동족 간 공통점(사고방식, 감정 등)을 발견하였고 서로의 이익과 안전을 위해 상호 교류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시점에 인간은 급격한 발전을 이루게 되는데, 낮은 단계의 조직생활을 시작하였고 초기단계의 언어가 발생하였을 것입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돌도끼와 오두막으로 대표되는 발전을 이룬 인간들에게는 타인이 먼저 세운 오두막을 빼앗기 보다는 그것을 모방하여 자신의 오두막을 짓는 것이 자신의 본성에 더 가까웠으므로 하나 둘 지어진 오두막이 모여 작은 사회가 형성되었습니다. 상호작용을 통해 강화된 동질감은 부부애, 부성애와 같은 유대감으로 발전하였고, 여기에서 바로 ‘소유’의 개념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루소는 이 시기를 최초의 혁명기로 보았습니다.

 

 

[비교의 발생]

 

사람들은 오두막 앞이나 큰 나무 주위에 자주 모이게 되었다. 연애와 여가의 진정한 소산이라 할 수 있는 노래와 춤이 모여든 한가한 남녀들의 심심풀이이라보다는 매일매일의 일과가 되었다. 그리하여 저마다 남을 주목하고 자신도 남에게 주목받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남들에게 인정받는 것이 하나의 가치를 지니게 되었다 …… 존경을 받았다. 이것이 불평등을 향한, 그리고 동시에 악덕을 향한 첫걸음이었다.

사람들이 서로 상대방을 평가하기 시작하여 존경이라는 관념이 마음속에 형성되자, 누구나 자기가 존경받을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것을 거부하면 누구도 무사하지 못하게 되었다.

로크 : “소유가 없는 곳에 바르지 못한 일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앞서 설명했듯 자연 상태의 인간은 자기보존의 욕구와 연민으로 인해 높은 절제력을 지닌 평화로운 동물이었습니다. 소유는 곧 온갖 종류의 악을 낳았습니다. 일시적 교류와 거듭된 왕래, 영속적인 교류를 통해 가치와 미의 관념이 발전하고 좋고 나쁨의 관념이 생겨났습니다. 자연 속에서 개인으로 살 때 전혀 중요하지 않았던 아름다움, 춤과 노래가 하나의 가치를 갖게 되었습니다. 비교는 존경, 허영, 경멸, 수치심, 부러움 등의 감정을 낳았고 자존심은 모욕과 복수를 낳았습니다. 그들은 아직 어떤 행위로 인해 발생하게 될 실질적 손해 보다는 손상된 자신의 자존심과 모욖 그 자체를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모욕은 곧 복수로 갚았기 때문에 , 인간들의 작은 사회에는 예의범절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루소가 생각한 이상적인 세계가 바로 이 시기의 사회입니다. 법 이전의 도덕이 사회를 교화하는 시대, 평화로운 본능과 발전한 이성에 덜 종속되는 세계의 진정한 청춘기였습니다.

 

[법률의 기원]

 

모든 진보는 외견상 개인의 개선을 향한 진전으로 보이나 실상은 종의 쇠퇴를 향한 발걸음이었음을 ……

다른 사람의 협력이 필요 없는 기술에 전념하는 동안, 그들의 본성이 허락하는 만큼 자유롭고 건전하고 선량하고 행복하게 살았으며, 계속해서 상호간에 독립적인 상태에서 교류의 평온함을 누렸다. 그러나 인간이 타인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순간부터, 그리고 혼자서 두 사람 몫의 양식을 차지하는 것이 유리함을 알아차리게 되자마자, 평등은 사라지고 소유가 도입되고 노동이 필요하게 되었다.

야금술과 농업이라는 두 가지 발명은 이러한 거대한 변화를 낳은 두 가지 기술이었다.

 

여러 차례 설명되었듯 소유와 비교와 불평등이 발생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사회가 형성되어 개인으로서의 인간으로 존재하지 않게 된 것이었습니다. 이전 사회에서는 인간들이 자존심을 갖게 되며 남들과 비교하면서 생긴 시기와 질투, 허영, 모욕 등 좋지 않은 점을 살펴보았지만 나름대로 도구의 편리함과 자연적 본성이 어우러져 이상적인 사회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사회는 철과 농업의 발명으로 인해 무너지게 됩니다.

우연히 분화된 용암에서 녹아내린 철을 보고 정제법을 연구하여 철제기구를 만들던 사람들, 수렵·채집을 포기하고 장시간 불확실한 미래를 견디어 농작물을 길러낸 최초의 사람들은 아마도 저녁에 필요한 것들을 아침에 생각하기도 힘든 미개인의 정신수준보다 한참 발달했던, 자연적 불평등 관점에서 혜택을 받은 사람들이었음에 틀림없었을 것입니다. 모두가 같은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자연적 불평등은 새로운 원인의 결합에 따른 정치적·도덕적 불평등으로 전환되어 갔습니다. 철의 이용과 농사는 대표적으로 타인의 협력을 필요로 하는 기술입니다. 수렵·채집을 넘어서 오두막 짓기, 돌도끼 만들기 등 협력이 필요 없는 기술만이 존재하던 시기에는 다른 이들의 것들을 탐하기 보다는 그것을 모방하여 나의 소유를 늘리는 것이 자연적 본능에도 적합했습니다. 하지만 철의 이용법을 발견하고 농사의 필요성을 깨달은 사람들에 의해 생활양식이 획기적으로 변하게 되었고, 재능이 없던 자들은 그것들을 모방하지 못하는 대신 자신의 노동을 대가 지불하며 안정을 보장받았고, 점차 부유한 자들에 예속되어 갔습니다. 이러한 예속과 잉여생산물의 축적은 빈부의 격차를 심화시켰고, 부자들은 타인을 지배하며 얻는 쾌감에 취해갔습니다. 그 결과 남보다 우위에 서려는 열망은 다른 어떤 충동보다 강한 만족이 되었고, 본인의 필요에 의한 것이 아닌 부를 축적하여 남보다 우위에 서려는 열망으로 인해 온갖 악이 발생하였습니다.

일부 가진 자들의 소유가 확대되며 끊임없는 분쟁이 일어났습니다. 지배와 굴종을 통한 부유한 자들의 횡령이 이어지고, 강하고 가난한 자들의 폭력과 약탈이 계속되었습니다. 부자들은 교묘한 말로 하나의 계책을 세우게 됩니다. 법에 의한 제도를 탄생시켜 폭력적이고 무지한 가난한 자들을 곧 자신을 지키는 방어자로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소유와 약탈 사이의 끊임없는 분쟁으로 말미암은 두려움을 활용하여 소유와 불평등을 벌률로써 영구히 고정시키고 횡령과 노동, 예속과 비참함을 정당화 시킨 것입니다. 무지한 이들은 자신의 자유를 확보할 심산으로 자신의 쇠사슬을 향해 달려갔습니다.

 

2단계 : 행정권력의 제도화

 

[법률의 기원]

 

초기의 사회는 몇 가지 일반적인 협약만으로 성립되어 있었다. 모든 개인은 그것을 준수할 것을 약속하며 공동체는 그들 각자에 대해 그 협약의 보증인이 되었다. 그와 같은 조직이 얼마나 취약하며, 공중만이 증인이자 재판관일 때 범죄자들이 얼마나 손쉽게 과실에 대한 증명이나 처벌을 피할 수 있는가는 경험을 통해서만 알 수 있는 일이었다. 이렇듯 법망을 벗어나기가 어렵지 않은데다가 불편과 무질서가 계속해서 증가하게 되자 사람들을 드디어 위험하게도 법을 집행하는 권력을 몇몇 개인에게 위임하고 국민의 의결 사항을 지키게 하는 일을 행정관들에게 맡겼다.

루이14세 : 왕국의 완전한 행복은, 군주가 그 백성의 신임을 얻어 백성들이 복종하고 군주는 법률에 복종하며 그 법률은 공정성과 언제나 공공복지를 지향하는데 있다.

 

위 내용의 핵심은 순서에 있습니다. 사회적 계약(협약)에 의해 공동체가 먼저 설립되었고 역시 사회적 합의에 의해 행정관이 선출되는 것입니다. 지금 보면 너무도 당연한 이 사실은 당시 전제군주제를 근본적으로 흔드는 것이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차차 살펴보겠습니다.

초기의 사회는 낮은 단계의 일반적 합의와 규칙으로 유지되었습니다. 이러한 합의에 의한 문제해결은 누구나 재판관이자 범죄자가 될 가능성이 있었기에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러한 무질서가 반복되자 사람들은 행정관을 선출하여 권력을 부여한 것입니다. 일부 철학자들은 인간에게 예속이라는 본성이 내재되어 있다든지, 가족생활에서 아버지의 권력에 의해 행정관들의 권력이 유래했다든지 하는 주장을 하기도 하였으나 결국 권력이란 자신의 재산과 자유와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시민들이 선택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뛰어난 지도자가 나타나 사회를 만들고 이끌었다는 전제는 틀린 명제이며, 이는 즉 전제군주들과 귀족들의 권력이 원래부터 그렇게 주어졌던 그들의 당연한 권리가 아니라 사회에서 시민들로부터 주어진 합의에 의한 힘이라는 것을 뜻합니다.

위에서 보았듯 권력이란 본래 내제된 것이 아닌 사회로부터 주어진 불평등의 산물입니다. 그에 반해 인간에게는 자연으로부터 주어진 천부적인 권리가 있는데 가장 중요한 권리는 ‘자유’였습니다. 이 자유의 가치가 짓밟히고 사회계약의 산물인 법의 위에 권력자가 군림하게 되면 전제권력이 생겨나게 되는데 이 단계가 루소가 제시한 불평등의 마지막 단계입니다.

 

3단계 : 전제권력의 확립

 

[자유의 가치와 인간성의 상실]

 

소유권은 사람 사이의 합의와 제도에 불과하므로 누구나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것을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다. 그러나 생명이나 자유 같은 자연의 본질적인 선물은 그렇지 않다. 그것은 누구나 향유할 수 있지만 그것을 포기할 권리까지 있는지는 적어도 확실치 않다. 즉 양자 가운데 한쪽(자유)을 제거하면 인간의 품위는 떨어지고, 다른 쪽(생명)을 제거하면 인간의 존재는 소멸된다. 그리고 이 세상의 어떤 재산으로도 그 양자 가운데 어느 것도 보상할 수 없으므로,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이것을 포기하는 것은 자연과 이성을 동시에 거스르는 일이 된다.

법률가들은 노예의 자식들은 태어나면서부터 노예가 된다고 엄숙히 선고했는데, 이것은 달리 말하면 인간이 인간으로 태어나지 않는다고 결론내린 것이나 다름없다.

즉 정부는 단지 전체적인 권력에서 시작된 것만은 아니다. 전체적인 권력은 정부의 부패가 극에 달한 형태에 불과하며…

행정관은 자기에게 맡겨진 권력을 오직 맡긴 자의 의향에 따라 행사하고 각자가 자기의 소유물을 언제나 안전하게 향유할 수 있도록 하며 어떤 경우에도 자기의 이익보다는 공공의 이익을 우선시해야 할 의무가 있다.

행정관의 직분과 그 권리는 오직 기본적인 법률을 토대로 수립되었으므로, 그 법률이 폐기되기라도 하면 행정관은 비합법적이 되며 인민이 그들에게 복종할 의무는 없어져버리기 때문이다.

만약 모든 권력을 장악하고 그 계약에서 오는 모든 이익을 자기 것으로 삼는 행정관이 그 권력을 포기할 권리마저 보유하고 있다면, 통치자들의 모든 잘못의 대가를 치르고 있는 인민들도 종속을 벗어날 권리를 가져야 함은 말할 것도 없다.

 

위 사상은 프랑스혁명에 이론적 토대를 제공하였습니다. 위 본문의 도입부에서는 천부인권을, 결론부에서는 사회계약의 파기를 통한 권력교체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이번 내용을 이야기하기 전에, 자연적 불평등이 사회적·제도적 불평등으로 전환되는 시점에 대해 다시 한 번 살펴보고 넘어가겠습니다. 신체능력의 차이는 태초부터 존재했던 자연적인 불평등이었지만 생존에 어려움을 직면하고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인간은 자기 자신과 동류의 인간들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상호작용을 시작하며 사회가 형성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비교와 소유의 개념이 생겨나며 자연적 불평등은 사회적 불평등으로 전환되었습니다. 처음 행정관을 선출 할 때에는 선거를 통해 뽑혔을 것입니다. 특출 나게 훌륭한 사람이 한 명 있었다면 그 국가는 군주제의 형태를 취했을 것입니다. 우열을 가리기 힘든 사람이 몇 명 있었다면 그 국가는 귀족제의 형태를 취했을 것이고, 균형 있는 사람들이 여럿 존재할 때에는 민주제의 형태를 취했을 것입니다. 어쨌든 서로의 합의(선거)를 통해 행정관을 선출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토론에 있을 때의 침착함, 농업에서의 경험 등이 선거의 주요 쟁점이 되며 노인들이 행정관으로 선출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났고 잦은 선거로 인한 파벌이 생겨났습니다. 이로 인한 분쟁이 과열되며 결국 무정부상태로 돌아가는 일이 잦아지자 이를 기회로 삼은 권력자들은 세습 등을 통해 권력을 영속화하였고 권력이 사유화되는 지경에 이르러 불평등이 극에 달하게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는 여러 가지 요인이 함께 작용하였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정점에 자리 잡은 권력자들은 소수의 어리석은 게으른 자들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어 일정 부분의 권력을 나눠주고 다수의 빈자들을 지배하는 피라미드형의 권력구조를 확립시켰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외부의 위험에 대비하여 애쓴 결과 오히려 내부에서 억압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인간들의 모든 활동 가운데 돈을 위해 일하는 자들에게만 명예가 생기고 평화로운 때에도 농부들이 밭을 떠나 쟁기 대신 칼을 드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이러한 무질서와 변혁 속에서 전제군주제는 완성됩니다. 이 시기의 인민들은 이미 통치자도 법률도 갖지 못한 채 오로지 폭군만을 갖게 됩니다. 전제군주제가 성립된 후 올바름이나 의무 등은 힘을 잃고 맹복적인 복종만이 유일한 미덕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더불어 종교의 경우 전제권력에 신권을 부여하여 권력을 더욱 공고히 하는 역할을 했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불평등의 마지막 도달점이며, 우리가 순환을 마감하면서 이르게 되는 출발점이자 종점이다. 여기서는 모든 개인이 다시 평등해진다. 신민은 이미 주인의 의지 외에는 아무런 법률도 갖지 않으며 …… 여기서는 모든 일이 다만 최강자의 법률로, 즉 하나의 새로운 자연 상태로 귀결되어 있다 …… 정부의 계약은 전제군주제에 의해 너무 많이 파기되어 있으므로, 전제 군주는 자기가 최강자로 있는 동안에만 지배자이다. 따라서 사람들이 전제군주를 몰아내려 한다면 그는 이러한 폭력에 전혀 항의할 수 없게 된다. 술탄을 죽이거나 왕위를 박탈하는 폭동도, 그가 전에 신민들의 생명과 재산을 마음대로 처리했던 행위와 마찬가지로 법정 행위이다.

 

결국 전제군주제는 사회적 합의에 의한 법률마저도 무력화시켜 시민들 스스로 계약을 파기하고 왕을 몰아내는 행위를 정당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제군주제는 불평등의 종착이자 새로운 시작점이 되는 것입니다. 위에서 이야기 했듯 이러한 사상은 불평등과 권력의 기원을 설명하고 왕을 몰아내는 행위에 이론적 토대를 제공하여 프랑스혁명을 이끌었고 전제군주제를 몰아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3. 결론

 

미개인은 자기 자신 속에서 살고 있는데, 사회인은 언제나 자기 밖에 존재하며 타인의 의식 속에서만 살아간다.

불평등은 자연 상태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으므로 인간 능력의 발달과 정신의 진보에 따라 성장하고 강화되며 소유권과 법률의 제정에 따라 안정되고 합법화된다고 결론내릴 수 있다.

자연법을 어떻게 규정하든, 어린애가 노인에게 명령하고 바보가 현명한 사람을 이끌며 대다수의 사람들이 굶주리고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최소한의 것마저 갖추지 못하는 판국인데 한줌의 사람들에게서는 사치품이 넘쳐난다는 것은 명백히 자연의 법칙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이상 루소의 시각에서 불평등의 기원을 살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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